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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한 국립박물관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국립박물관에서 기간제 근로자(학예연구원)로 일했다. 우연히 나온 공고에 응시하여 지원하게 되었고, 운 좋게 뽑힐 수 있었다. 당시 국가귀속 유물 등록작업 사업이 전국 박물관에서 시작되어, 내가 입사한 해에 채용인원이 대폭 늘어났다. 

 

국립박물관에서 일하는 학예연구원의 역할은 학예사를 보조하는 것이다. 말이좋아 보조지 온갖 잡다한 일을 다한다고 보면 된다. 나도 맡은 일은 유물 등록이었지만 전시를 비롯해 각종 행사에 동원되고, 특히 노가다를 도맡아 했다. 박물관의 특성상 남자보다 여자가 많기 때문에 힘쓸 일이 있으면 무조건 불려 다녔다.

 

당시 내가 받은 월급은 약 백여만 원 수준이었다. 연봉 1200만 원이라는 놀라운(?) 금액으로, 난 이 돈으로 방도 구하고 먹고살고, 저축해 대학원 등록금을 마련했다. 물론 지금은 더 많이 주겠지만, 국립박물관에서 일하는 학예연구원의 급여는 최저시급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또 근무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2년이며, 이후 운이 좋으면 무기계약직(공무직)으로 일할 수 있다. 하지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게 어렵고, 일한다고 해도 정년만 보장될 뿐 급여는 계속 낮은 수준으로 받아야 한다. 안정적이긴 하지만 장래성이 없는 자리가 무기계약직이다. 

국립박물관의 장점

국립박물관에서 일하면서 느낀 장점은 먼저 체계적이다. 국립 박물관답게 모든 업무가 체계적으로 돌아간다. 역할분담이 비교적 잘 되어 있고,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일하는 구조다. 나도 옆에서 보고 듣고 같이 경험하면서 참 많은 걸 배웠다. 전시의 기획부터 오픈까지 일련의 순서를 정석대로 배울 수 있다. 

 

두 번째 장점은 비교적 터치가 적다.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면 사람 대우해준다. 아무리 기간제 근무자라고 해도 무시하거나 막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물론 이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니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일 수 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막대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세 번째 장점은 출퇴근과 연차가 자유롭다. 정시에 출근하여 정시에 퇴근한다. 학예연구사야 야근을 밥먹듯이 하겠지만, 기간제 근로자는 웬만하면 정시에 퇴근시킨다. 전시 및 행사로 바쁠 경우 야근을 하는데 야근수당도 챙겨주고, 오버되는 시간을 계산하여 쉬게 해 준다. 연차 역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거절당한 적이 없고, 바쁠 때가 아니라면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네 번째로는 학예사 자격증에 필요한 경력을 채울 수 있다. 준학예사는 1년, 정 3급 학예사는 2년의 경력이 필요하다. 국립박물관은 말할 필요도 없이 경력 인정기관이며 이를 입증하는 것도 쉽다. 나의 경우 매일 업무일지를 작성했고, 발간된 도록에 내 이름이 삽입되었다. 그래서 학예사 자격증을 취득하는데 증빙서류로 활용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맥을 넓힐 수 있다. 국립박물관은 많은 학예인력들이 수시로 바뀐다. 순환 근무하는 학예사들은 몇 년에 한 번씩 자리를 옮겨야 한다. 그래서 많은 학예사들을 만날 수 있다. 또 같이 기간제 근로자로 일하는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 업계에 있으면 언젠가는 만날 사람들이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된다. 

국립박물관의 단점

물론 단점도 있다. 첫 번째로 급여가 짜다. 진짜 최저시급 수준으로 맞춰주는 게 대부분이다. 시간이 지난다고 많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명절에 나오는 떡값도 적다. 딱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급여를 준다. 그래서 일하면서 저축을 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두 번째는 근무 할 수 있는 기간이 짧다. 처음 계약한 이후 연장도 가능한데 최대 2년이 한계다. 무기계약직(공무직)으로 전환될 수도 있지만, 일부 사람들에 한해서만 가능하지 대부분 2년 안에 나가야 한다. 정 3급 학예사 자격증에 필요한 경력이 2년인 것을 감안하면 퇴사 이후 다른 경력 인정기관을 또 찾아 떠돌아야 하는 일이 생긴다.

 

세 번째는 시간을 엄수해야 한다. 전시, 유물 등록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은 기한이 정해져 있다. 이 시간 안에 달성하지 못하면 큰 일(?)이 난다. 그래서 업무가 타이트한 편이다. 물론 타이트한 업무로 배우는 게 많겠지만, 급여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고위직 공무원 중 꼰대가 많았다. 이거야 뭐 어딜 가나 있는 분들이니 박물관에만 한정되는 건 아니다. 특히 회식이 있을 때면 끝까지 남아 어르신들의 분위기를 맞춰드려야 했다. 눈치 빠른 학예사들은 적당히 다 도망가고, 마지막까지 남는 건 아니러니 하게도 높으신 분들과 (당시) 어렸던 우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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