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6 - [생활의발견] - [고고학 소설] 타임 어태커(Time Attacker) 1
2020/08/17 - [생활의발견] - [고고학 소설] 타임 어태커(Time Attacker) 2
2020/09/01 - [생활의발견] - [고고학 소설] 타임 어태커(Time Attacker) 3
2020/09/02 - [생활의발견] - [고고학 소설] 타임 어태커(Time Attacker) 4
지수와 바(Bar)로 향했다. 친구들과 자주가는 곳으로, 종구와 도원이도 불러냈다. 어차피 같이 조사를 하게 된거 인사차 술 한잔하면 좋을거 같았다. 이놈들도 야식이 고팠는지 금세 나왔고, 바에서 이것저것 안주를 주문해댔다. 지수가 우리와 함께 조사를 하게되었다 말을 꺼냈는데도 두 돔은 놀라기는 커녕 그런가보다 하는 눈치였다.
아마 교수님을 구워삶기전 지수가 두 놈들한테 먼저 접근했던거 같다. 그러면 그렇지...그런데 두 놈은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었다. 어찌되었든 이제 4명이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숙소다. 캠핑을 하기로 했는데, 지수가 머물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지수도 합류했고, 캠핑은 아마 무리일거 같은데"
난 다시 해수욕장 근처에 숙소를 잡자고 제안했다. 아무래도 여자와 같이 있으면 불편하다. 옷 갈아입는거부터 샤워, 화장실 뭐 하나 쉬운게 없다. 난 지수 핑계를 대고 숙소를 잡으려 했다.
"전 아무대서나 자도 괜찮아요, 절대 성가시게 굴지 않을게요"
"그래도 여잔데 아무대서나 자긴 그렇지"
내 말에 다들 혀를차며 웃었다. 지수를 걱정하는 듯 말했지만 본의가 아닌걸 다들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가차다는 듯 웃어댔다. 지수도 무슨 그런말을 하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이놈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아니, 힘들게 밖에서 일하면 잠이라도 편히자고, 샤워라도 할 수 있어야지 왜 굳이 캠핑을 하려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리용 텐트는 꽤 넓으니 간이용 침대 2개는 놓을 수 있을거야. 너가 지수랑 거기서 지내면 되겠네"
도원이는 본인이 조리용 텐트에서 잔다고 했던걸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왜?"
"선배가 절 끔찍히 아끼시니 그게 낫지 않겠어요?"
괜한 말을 꺼냈다가 본전은 커녕 많은걸 잃게 생겼다. 아마 이놈들은 미리 말을 맞춘 모양이다. 그러니 내가 당해낼 재간이 없다. 난 박하디를 한 모금 들이켰다. 목이 타는 듯한 느낌이 온몸으로 퍼졌다. 머물곳은 정해졌고, 우리는 식사와 샤워, 화장실 등에 대해 논의했다.
샤워장은 해수욕장을 이용하면 된다. 거리가 좀 있어도 다녀올만하다. 근처에 편의점도 있고 식당도 있으니 저녁식사를 때우기도 좋다. 다만 화장실이 문제였다. 남자들인 우리야 상관없지만 문제는 지수였다. 발굴현장에서 해수욕장까지는 걸어서 15분은 가야한다. 화장실 한번 가려는 수고치고는 너무 멀다.
"간이 화장실 만들어줄게"
"구덩이 좀 파고 가림막을 치면 될거야"
종구가 별 문제 아니라는 듯 말했다. 하지만 지수는 손사래를 쳤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쉬는 시간에 다녀올게요"
"밖에서는 절대, 절대 안돼요"
"너 그러나 병걸려"
도원이의 말에 다들 웃어댔다. 지수도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개졌다. 아무튼 화장실은 그렇게 일단락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식사였다. 아침이야 먹어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이다. 또 저녁은 해수욕장 근처에서 때울 수 있다. 문제는 점심이다. 하루 이틀이야 라면을 먹으면 된다지만, 음식물을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고 직접 요리도 해야한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내가 또 이상한 말을 했나보다. 다들 뭔소리하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런데 정말 궁금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주거지(집)를 발굴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식사를 했을지 궁금해 하는게 이상한가? 그들도 음식물을 보관하고 식사시 꺼내어 요리해 먹었을 것이다. 그들에겐 일상이었을테고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불편해하지? 라는 이상한 물음이 생겼다.
"주식은 도토리와 같은 견과류를 먹었을거야, 바닷가 근처니 조개와 생선도 잡을 수 있고"
종구는 교과서에 나와있는 내용을 본인의 생각인양 말했다. 도토리는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자주 발견된다. 씁쓸한 맛을 없애기 위해 물에 담가두었다가 갈판과 갈돌을 이용해 분쇄 후 조리해 먹었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다. 조개와 생선은 소금에 절여두면 짧은 시간이나마 보관해두고 먹을 수 있다.
또 농사도 지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대규모로 쌀 농사를 짓는 형태는 아니었겠지만 좁은 면적에 곡물을 심고 수확하는 형태는 갖췄을 것이다. 거기에 양, 소 등을 길러 고기를 얻었을 것이다. 물론 수렵을 통해 사냥감에서 고기를 얻기도 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음식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우리가 영화에서 보던 원시인처럼 미개한 생활을 한건 아니었다.
"그럼 우리도 해보면 되지"
"매 끼니를 그렇게 먹을 순 없고, 하루에 한 끼정도는 야외에서 조달하면 어때?"
종구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확실히 재미있을거 같다. 책상에 앉아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어쩌고 저쩌고를 논해봐야 탁상공론일 뿐이다. 실제 그들과 같은 삶을 체험해보면 책에서 얻는것 보다 훨씬 값진 경험이 될 것이다. 보통 이런 방법은 민족지학자들이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게 없다. 게다가 우리는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주거지 근처에서 야영을 하니 그들과 조건도 비슷하다.
"그래 한번 해보지 뭐"
반장인 내가 결정하니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잔을 부딪히고 술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섰다. 종구와 도원이는 바를 나서자마자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며 가버렸다. 벌써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지수를 보니 대려다주지 않으면 넌 남자도 아니야하는 표정으로 레이저를 쏘아대고 있었다.
"집이 어디니?"
지수는 원룸에서 자취를 한다고 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본인 얘기를 술술 해댔다. 지수 가족은 아르메니아에 살고 있다고 했다. 거기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터키 근처에 있는 작은 나라란다. 지수 아버님은 한국어를 가르치시는 교수님으로 아르메니아 한 대학교에서 근무하신다고 했다. 건너간지는 10년정도 되었고, 지수도 중고등학교를 아르메니아에서 마쳤다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나라였다. 슬쩍 지도를 검색해보니 정말 작은 나라였다. 구 소련에 포함 된 나라였다 독립했고, 경제력은 베트남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더 물어볼까 하다 그만두었다. 괜히 시작했다가 정말 밤을 새는수가 있다. 나도 슬슬 졸려왔다.
"선배는 달라요"
자취방 근처에 도착하니 또 저소리를 해댔다.
"가"
나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 지수가 쳐다보는 시선이 등 뒤로 느껴졌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쉽지 않은 길을 가게 되었다. 우연히 들른 바닷가에서 주운 토기 한 조각이 이 사태(?)를 불러 일으켰다. 아니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그래도 왠지 싫지 않았다. 대학생활의 끄트머리에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틈나는대로 필요한 물건을 준비했다. 캠핑용품은 도원이가 준비했고, 종구는 연구소 차를 빌려 두었다. 라면과 즉석밥, 물을 잔뜩 사두었다. 야외에 두고 먹을만한 음식이 많지 않았다. 가뜩이나 살이 안쪄 걱정인데, 이번 현장을 다녀오면 몇 kg은 더 빠져있을 것이다.
금요일 오후 민 교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 과 실습실에 모여 교수님을 기다렸다. 교수님은 키가 작고 깡 마르셨다. 게다가 머리는 백발이다. 연세는 오십을 갓 넘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염색은 취향이 아니신가보다. 교수님은 실습실로 들어오셔서 곧장 나에게 다가오셨다. 그리곤 다짜고짜 흰 봉투 하나를 내게 건내셨다.
"잘해봐"
그리곤 한명 한명 눈을 마주치시곤 실습실을 나가셨다. 뭐지?하고 다들 흰 봉투에 눈이 쏠렸다. 열어보니 돈이었다. 꽤나 두툼해 세어보니 무려 300만원이었다. 조사비라면 법인 카드로 결제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왠 현금을 주시지? 다들 의아해 했다.
나는 건물을 달려 내려가 차에 막 오르신 교수님을 붙잡았다.
"교수님 이건.."
"필요한거 사. 고기도 좀 먹고"
"이상한 돈 아니야. 내가 주는거야"
"하지만 교수님"
"잘할거야. 걱정말고"
이 한마디를 남기시고는 차를 몰고 휙 가버리셨다. 난 인사도 못 드리고 뻣뻣하게 서 있었다. 두 놈과 지수가 다가와 내 표정을 살폈다. 난 어깨를 들썩이며 나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설명을 들은 지수와 친구들 역시 놀랐다. 그런데 교수님은 그런 분이셨다.
겉보기에는 작고 나약해 보이지만, 마치 조선시대 선비와 같이 대쪽같은 면이 있는 분이다. 평소에는 자상하시고 화내시는걸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다만 학회에서는 조근 조근한 말투로 토론자들을 박살내는 분이다. 또 소신이 워낙 뚜렷하셔서 비리를 보면 절대 지나치시지 않는다.
전에 근무하시던 박물관에서 관장까지 올랐으나, 비리를 폭로하고 내부고발자로 찍혀 사임하셨다고 들었다. 그 비리라는게 사적인 모임에 참여하셨다 법인 카드로 식사비를 결제하는 고위공무원을 지적하시며 시작되었다. 교수님은 사적인 모임이니 법인카드를 사용하면 안된다 하셨고, 정 뭐하시면 본인이 내겠다 하신 모양이다.
그 고위공무원은 교수님의 한참 선배였다. 당연히 자존심이 상해 뭐 이런 작은거까지 신경쓰냐며 그만 두라고 교수님을 몰아세웠다. 교수님은 기어코 법인카드 결제를 취소하고, 본인 카드로 다시 재결제를 하셨다. 그걸 본 고위공무원은 크게 화를 내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사이가 멀어졌다.
그때부터 교수님은 인사평가에서 최저점을 받기 시작했고, 관장에서 실장으로, 실장에서 다시 연구관으로 좌천되셨다. 하지만 민 교수님은 개의치 않고 박물관에서 계속 근무를 하셨다. 그러다 우리학교에서 고고학 교수를 초빙한다는 공고를 보시고 자리를 옮기셨다. 교수님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박물관에서 회자되었고, 학계에서도 민 교수님의 활약상(?)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듣기로는 교수 월급을 받아 후원도 많이 하신단다. 여러모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다.
도원이 놈이 고기를 먹자했다. 이제 며칠 후면 고생길이 시작되는데, 그 전에 목에 기름칠을 하자는 것이다. 돈도 생겼겠다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소고기를 먹기로 했다. 소주도 곁들이며 다들 걸신들린 사람처럼 먹어댔다. 지수도 은근히 먹성이 좋았다.
"다들 매일 일지를 작성해"
"종구는 사진을 담당하고, 도원이는 물품관리를 해"
"지수는 청소를 맡고, 나는 돈관리와 전체적인 상황을 볼게"
그렇게 우리의 역할이 정해졌다.
"주말에는 쉬나요? 주5일제죠?"
지수의 물음에 다들 빵 터졌다.
"뭐하게, 집에가게?"
"해수욕장에 왔으니 놀기도 해야죠"
"그러시던지"
그렇게 자리를 파하고, 월요일 아침에 만나기를 기약하며 집으로 향했다. 정말 쉽지 않은 2주가 될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가 될 수 도 있다. 하지만 2주가 지나면 우리는 부쩍 성장해 있을게 분명하다. 이런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두 친구와 비롯해 지수는 동료로 나쁘지 않다. 난 집에서 혼자 더 마시려 맥주를 샀다. 오늘은 왠지 쉽게 잠이 오지 않을거 같다.
6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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