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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6 - [생활의발견] - [고고학 소설] 타임 어태커(Time Attacker) 1

 

[고고학 소설] 타임 어태커(Time Attacker) 1

Ⅰ 스스로를 무기력한 남자라 생각했다. 나이를 먹어도 변한 게 없었고, 의지는 물론 행동력도 없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나를 평범하다고 말한다. 평범하다는 게 별다를 게 없다는 의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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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7 - [생활의발견] - [고고학 소설] 타임 어태커(Time Attacker) 2

 

[고고학 소설] 타임 어태커(Time Attacker) 2

타임 어태커(Time Attacker) 1 Ⅰ 스스로를 무기력한 남자라 생각했다. 나이를 먹어도 변한 게 없었고, 의지는 물론 행동력도 없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나를 평범하다고 말한다. 평범하다는 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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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의 제안에 우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갑자기 종구 놈이 씩 웃으며 "네!"하고 우렁차게 대답을 했다. 나는 이놈이 무슨 상황인지 알고나 대답하는 건가 싶었다. 어릴 적부터 고고학자를 모험가로 착각해 동경하던 종구 놈은 교수님의 제안을 마치 모험의 전초단계로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교수님, 그건 좀 무리라고 생각하는데요."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고학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문화재 발굴 기회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문화재 발굴은 아무나 막 할 수 있는 그런 영역이 아니다. 조사절차가 있고, 국가에서 정한 조사원 기준에 따라 역량이 충분한 인력만이 할 수 있는 무게감 있는 일이 바로 문화재 발굴조사다. 

 

그런 일을 아직 대학도 졸업못한 우리 3명이서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아니 그러면 안된다. 문화재 발굴조사 역시 엄연한 파괴행위기 때문에 숙련된 전문가가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나는 머릿속으로 정리된 이 생각들을 교수님께 말하려 한참을 뜸을 들였다. 내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했는지 교수님은 나를 차분히 쳐다보셨다. 

 

"너희가 걱정하는 부분, 내가 처리하지. 걱정마라."

 

"너희는 현장에 상주하며 조사를 하고, 내가 자주 찾아가 봐줄 거야."

 

"이미 반 이상이 파괴된 유구라 건질게 많이 없겠지만, 최대한 조사를 해봐."

 

"너희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게 분명해."

 

교수님의 말씀을 들은 우리는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교수님이 봐주신다면야 큰 문제는 없겠지만, 조사과정에서 즉각 즉각 판단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선 여전히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나도 이 기회가 얼마나 좋은 경험이 될지 알기 때문이다. 

 

 

교수님의 연구실을 떠나 우리는 편의점에 들러 소주와 맥주 그리고 안주거리를 샀다. 그리고 잔디밭에 둘러앉아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도원이 놈은 맥주 한잔 마셨을 뿐인데 벌써 얼굴이 빨개졌다. 한참을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다 종구 놈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네가 우리 중에 경험이 가장 많으니 반장해라."

 

마치 손가락에 든 사탕을 건네주듯 아주 가볍게 말했다. 

 

"뭔 개소리야, 갑자기 반장은 뭐야."

 

"네가 유적을 발견했고, 네가 시작한 일이니 반장해. 우리가 옆에서 도와줄게."

 

네가 시작한 일이라는 종구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하긴 내가 시작한 일이었다. 내가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갈 그런 사건(?)이었다. 종구 놈은 내가 일을 크게 키웠다고 원망하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내심 본인이 맡기에는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도원이 놈은 전공 선택에 고민이 많아 고고학 공부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나마 내가 1학년 때부터 학교 연구소를 들락날락하며 발굴 현장을 누빈 경험이 있었다. 종구와 도원이를 고고학으로 끌어들인 것도 나였다. 이번 일을 시작한 것도 나이니, 종구의 제안을 거절할 명분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며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며칠 후 학교 연구소 문 선생님이 우리를 호출했다. 문화재기관에서 발굴로 잔뼈가 굵은 선생님으로 지금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계셨다. 깡 마른 몸에 긴 머리 그리고 안경까지 쓰고 계셔서, 고고학자라기보다는 도인에 가까운 인상을 갖춘 분이다. 우리는 연구소 테이블에 둘러앉아 말똥말똥 눈만 뜨고 있었다.

 

"교수님에게 들었다. 너희들이 발굴을 한다고?"

 

"네"

 

"자신은 있냐? 너랑 종구는 현장 좀 다녀봤고, 도원이는 처음이지?"

 

"저도 지난 방학에 서울 현장에서 알바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소개해 주셨잖아요..."

 

"아, 그랬나?"

 

문 선생님은 매일 술을 드셔서 그런지 자주 깜빡깜빡하셨다. 후배들을 잘 챙겨주시지만 현장에서는 워낙 깐깐해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 1순위다. 그럼에도 문 선생님이 갖추신 현장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서울에서부터 경주를 비롯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문화재 조사를 하셨고, 현재 학교 연구소를 맡고 계시다. 

 

"일단 조사단 구성이 필요하니 교수님이 단장 겸 책임조사원을 맡으실 거고, 내가 조사원을 맡을 거다."

 

"준조사원과 보조원도 연구소 인력으로 충당할 거고, 너희들은 예전처럼 알바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건 명목상이고 실제로 조사를 하는 건 너희들이야."

 

"교수님과 내가 현장을 자주 찾아가며 봐줄 테니, 알아서 해봐."

 

"난 민 교수님이 이 일을 왜 이렇게 신경 쓰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키신 일이니 잘해보자고."

 

정리하면 이랬다. 문화재 조사를 하기 위해선 조사단 구성이 필요한데, 아직 학부생인 우리는 조사원 자격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교수님을 비롯한 연구소 인력으로 조사단을 꾸리고 우리 3명은 알바 형식으로 들어가게 된다. 또 조사비는 문화재를 파괴한 지자체에서 부담하고, 조사일은 총 2주가 부여되었다. 

 

유적이 작아 책정된 조사비가 얼마 되지 않지만, 학술발굴 명목으로 지원을 받아 주머니 사정은 나름 넉넉했다. 조사 착수는 2주일 후다. 여름방학 시작과 동시에 우리는 현장에서 상주하며 문화재 발굴 조사를 할 것이다. 그에 앞서 숙소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방법으로 2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근처 허름한 모텔이나 여관을 잡아 생활하는 방법 또는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당연히 숙소를 잡을 생각이었는데, 도원이 놈이 야영 아니 캠핑을 하자고 제안했다. 하루 이틀이면 캠핑이고 야영이고 할 만한데 2주 동안 밖에서 자는 건 아무래도 아니지 않나? 싶었다. 

 

"그래 좋다 이거야. 여름이라 얼어 죽을 일은 없겠지. 그런데 샤워는 어디서 하고, 화장실은 또 어떻게 할 건데?"

 

"근처 해수욕장에 샤워장 있잖아, 화장실도 있고."

 

도원이 놈은 뭐가 문제냐는 듯 퉁명스레 말했다. 이놈은 문화재 발굴조사보다 캠핑할 생각에 들뜬 듯했다. 평소에도 캠핑을 좋아해 이런저런 장비를 사모으는 놈이다. 얼마 전에도 냄비 하나를 15만 원 주고 샀다고 자랑하길래 미친놈인가 했다. 다이소가면 5천 원이면 사는걸 15만 원이나 주고 산다고? 캠핑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세계다. 

 

 

도원이 놈과 내가 숙소와 캠핑을 두고 옥신각신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종구가 끼어들었다. 

 

"우리도 이제 마지막인데, 캠핑도 나쁘지 않지."

 

도원이 놈은 거 보란 듯이 삐죽 웃어댔고 내가 허탈하게 웃으니 상황이 정리되었다. 우리는 캠핑을 한다. 젠장.

 

 

문화재 발굴 조사까지 2주의 시간이 남았지만, 가만히 놀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다가오는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하고, 사전조사도 해야 했다. 우리는 틈나는 대로 연구소에 들러 사전조사를 했다. 유적이 위치한 곳의 문화재 분포지도를 확인하고, 주변에 조사된 유적이 있는지 파악했다. 

 

대천해수욕장 주변은 시골이라 그런지 발굴된 유적은 거의 없었다. 발굴은 보통 구제발굴이 주를 이루는데, 그 이유는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내는 등 토목공사가 대부분이다. 유적 주변은 해수욕장 외에 딱히 들어선 시설이 없어 대부분 산과 농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현장에서 머물 텐트는 도원이의 장비를 사용하기로 했다. 텐트는 총 2동을 치는데, 한 동은 잠자는 용도고, 다른 한 동은 조리공간이다. 장정 3명이 한 텐트에서 자기 좀 그래서 도원이는 조리공간에서 자기로 했다. 캠핑을 자주 다녀 야외 조리가 익숙한 도원이라 식사도 담당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캠핑을 하면 음식도 해 먹어야 한다. 김밥이나 라면으로 때우는 것도 한계가 있어, 음식도 구비해야 하고 따로 보관할 장소도 필요했다. 그런데 전기도 안 들어오는 허허벌판에서 이게 가능할 리 없다. 그럼에도 도원이 놈은 신이 나서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고 걱정 말란다. 해맑은 도원이의 얼굴을 보니 걱정이 가시기는커녕 기분만 더 침울해졌다. 

 

연구소를 나와 터벅터벅 자취방으로 걸어가는데 웬 여자가 길을 막아섰다. 그놈의 도를 아십니까는 여기에도 있나? 하고 스윽 비켜 가려는데 다시 길을 막아서고는 이제는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밀어냈다. 뭐 이런 예의 없는 도인(?)이 있나 하고 고개를 들어 보니 지수였다.

 

선배의 강요로 신입생 OT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난 신입생이 지수였다. 고고학을 하고 싶다며 졸졸 따라다니며 별 이상한 질문을 해대는 녀석이다. 중고등학교 때 배구를 했다고 들었는데 키는 160cm가 될까말까다. 아무래도 키가 작아서 배구를 포기했나 싶다. 

 

"선배 어디 가요?"

 

"집"

 

"문 선생님께 들었어요. 선배 발굴한다면서요?"

 

"응"

 

"저도 끼워주시면 안 돼요?"

 

"응"

 

"된다는 거예요, 안된다는 거예요?"

 

"응, 안돼"

 

참 많은 후배들이 있었지만 난 그런 관계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았다. 선배들은 깎듯이 모셨지만, 내가 누군가의 선배가 되는 건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모임을 자제하고, 후배들과 대화도 거의 하지 않았다. 수업에서 만나도 보는 둥 마는 둥 하여 대부분의 후배들이 나를 모른 척 지나친다. 그런데 이 녀석만큼은 달랐다. 

 

 

나만 보면 집요하게 질문을 해대고, 졸졸 따라다닌다. 뿌리치려 냉대해도 이 녀석은 신경도 안 쓴다. 그만큼 상대하기 어려운 녀석이다. 또 인문대에서 인기가 많기로 소문난 지수다. 배구를 해서 그런지 몸매가 탄탄하고 얼굴도 귀염상이다. 그건 인정이다. 그런데도 이 녀석과의 대화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머리가 아프다. 

 

"그럼 교수님과 문 선생님께 말해 볼게요"

 

"제발 그러지 말아 줄래?"

 

"아니, 꼭 그렇게 할 건데요."

 

"우리 텐트에서 잘 거야. 너 잘대도 없어. 샤워도 못하고 화장실도 없다니까"

 

"제 텐트는 제가 준비할게요. 안녕히 계세요"

 

항상 나긋나긋한 말투로 인사까지 잊지 않는 지수다. 그래서 더 재수 없다. 지수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휙 가버렸다. 아무래도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종구 놈 말을 듣는 건데, 정말 괜한 짓을 한 거 같다. 특히 지수 녀석이 합류한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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