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Pengu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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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벌써 5년이나 되었다. 러시아 여자를 만나 국제결혼을 했고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옮겨 다녔다. 전세살이도, 이사 다니는 것도 힘들어 와이프와 내 집마련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어디서 살아야 할까?

 

직장을 다니는 곳? 러시아? 우리는 여러모로 고민하다 부산을 택했다. 경기도가 고향이라 부산과는 연이 없다. 모스크바 출신인 와이프는 바다를 몇 번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부산을 택한 건 그냥 살고 싶어서다.

 

코로나 때 해외여행이 막히자 여름휴가로 부산을 몇 번 다녀왔다. 대도시고 인프라도 잘 갖추어져 있고, 날씨도 따뜻하고 무엇보다 바다가 있는 게 너무 좋았다. 친척, 친구도 없고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야 하지만, 그래도 살고 싶었다.

 

뜨거운 여름에 이사를 할 예정이라, 따뜻한 봄에 집을 보러 갔다. 항상 버스만 타고 다니다가 처음으로 KTX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코레일 지역사랑 철도여행에서 부산타워+KTX 티켓을 구매했는데 살짝, 아주 살짝 저렴하다.

 

부산에 도착하니 비가 우수수 내리기 시작한다. 와이프는 비를 몰고 다니는 여자다. 재작년 여름에 부산에 왔을 때는 역대급 태풍이 몰아쳤다. 물놀이는커녕 식당, 카페 등이 물에 잠겨 먹고 마시는 것도 제대로 못 즐겼다.

 

집을 보러 온 첫날도 비가 쏟아졌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근처에 있는 라멘집을 향했다. 첫날이니 좀 쉬면서 긴장을 풀기로 했다. 

 

지역사랑 철도여행에 포함된 부산타워도 들렀다. 부산을 몇 번 와보기는 했지만 부산타워는 처음이다. 솔직히 부산타워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남산타워처럼 생긴, 기다란 건물인데 특히 외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무슨 퀴즈를 맞히면 선물을 주는데 와이프가 하자고 졸라 숨은 그림 찾기 하는 문제를 풀었다. 부산타워 기념품 매장에는 고양이 친구들이 애교를 부리며 손님을 맞아준다. 어찌나 애교가 많은지 배를 드러내고 누워 만져달라며 야옹야옹 거린다.

 

우리가 살 부산의 야경이다. 그동안 참 많은 도시에 살았는데 경상도, 부산 지역은 처음이다. 경기도, 서울, 전라도, 강원도, 제주도 등에 거주하다 이제 그 종착점으로 부산을 택했다. 이유는 그냥 살고 싶어서... 이게 다 와이프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러시아로 이주할 계획이었다. 결혼 후 몇 년간 자금을 모은 후 모스크바에 집을 마련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코로나가 퍼져 와이프는 몇년간 부모님도 못 만나 뵈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질 무렵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다.

 

모스크바는 전쟁 영향이 별로 없다. 하지만 비자, 마스터 카드는 물론 유니온페이도 막혔다. 송금도 어렵고, 직항도 사라졌다. 이래저래 러시아 경제가 흔들리니 모아둔 자금을 들고 이주를 하는 건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부산을 택했다. 바다가 있고, 대도시며 특히 러시아인들이 많이 거주한다. 부산에 정착해 아이도 갖고 오손도손 살기 딱 좋다.

 

 

본격적으로 집을 보러 다니는 날. 남포역에 위치한 롯데백화점에서 아점을 먹었다. 난 칼칼한 순두부찌개, 와이프는 달달한 불고기로 식사를 했다. 하루종일 발품을 팔며 돌아다녀야 하니 잘 먹어두었다.

 

우리는 무작정 내려왔다. 살고 싶은 지역을 찍어둔 것도 아니고, 부동산에 미리 연락해 놓지도 않았다. 무작정 내려와 무작정 돌아다녔다. 이렇게 돌아다니면 뭐가 될까 싶어 영어가 가능한 부동산중개인을 검색해 봤다. 내가 중간에서 통역을 하니 시간을 너무 잡아먹어 비효율적이었다.

 

의외로 몇 군데 업체가 나왔다. 다만 전화를 걸면 다들 못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아니?! 부산시청에 등록된 영어 가능한 부동산이라 전화했는데요?!라고 해도 말이다. 영어를 잘 못한다며 다른 곳을 찾아보란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커피 한잔을 하고 있는데, 거절당했던 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영어를 잘 못하지만 그래도 해보겠단다. 젊은 부동산 소장님인데 구수한 부산 사투리를 겸비하고 계셨다. 그렇게 소장님의 차를 얻어 타고 이 집 저 집을 다녔다. 

 

 

우리 부부가 소장님께 요청드린 건 이랬다.

 

첫째, 3억 원 이하의 아파트. 주택도시기금에서 내집마련디딤돌대출을 받으려면 조건이 까다롭다. 생애최초, 신혼부부는 최대 4억원까지 대출이 나오지만, 3억원을 넘어가면 80%가 풀로 나오지 않는다. 2.99억원이면 되는데 3억원은 안된다. 그래서 3억원 이하의 아파트를 보기로 했다.

 

둘째, 방 3개, 화장실 2개 이상. 아이를 가질 예정이라 방 3개는 필수다. 화장실도 한 개짜리에 살아봤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와이프가 샤워하러 들어가면 부글 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던 적도 있다. 드디어 와이프와 각방, 각자 화장실을 쓸 날이 왔다.

 

셋째, 신축. 와이프는 깔끔 떠는 여자다. 더럽고 오래된 걸 싫어한다. 3억 원 이하인데 신축을 구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유명 브랜드 아파트는 당연히 힘들겠지만, 세대수가 적은 아파트는 꽤 있었다. 

 

3억원 이하 신축인데 방 3개, 화장실 2개짜리 아파트를 구할 수 있을까? 무리한 요청이라 생각했는데 소장님은 이곳저곳 전화를 거시더니 매물을 몇 개 찾아주셨다. 와이프와 영어로 직접 소통하시니 내가 너무 편했다. 어려운 부동산 용어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 와이프도 영어권 국가 사람이 아니라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나를 거치지 않고 둘이 소통하니 효율적이다. 소장님도 영어가 능숙하신 건 아니지만, 외국인 대상으로 중개업을 하고 싶으셔서 그런지 더 의욕적으로 안내해 주셨다.

 

단순히 아파트를 보고 결정하면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매물을 찾는 게 첫 번째, 내 집마련디딤돌 대출을 80% 받는 게 두 번째, 현재 살고 있는 전세 잔금일과 이삿날을 맞추는 게 세 번째 등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우리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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