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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석 나이&프로필

 

정치인 윤희석의 나이는 1971년생이다. 서울 출생이며 본관은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파평 윤 씨다. 학력은 영동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인디애나대학교 경영대학원(석사)을 졸업했다.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에서 근무했으며, 2007년 한나라당 서울시 선거대책위원회 부대변인으로 활동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어린 시절 밥 굶을 걱정을 안 했을 정도로 집안이 유복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를 다녔지만 어릴 적 꿈은 정치인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한자 공부를 할 겸 신문을 즐겨봤다. 신문의 1면을 장식한 정치 기사를 보고 정계에 진출하는 꿈을 키웠다. 

 

어릴 적 꿈대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희망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부모님의 지원 덕분에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던 탓에 진로를 경영학과로 틀었다. 다행히 경영학 공부는 재미있었고 적성에 맞았다.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을 떠나 인디애나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취득했다. 귀국 후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열망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전공을 경영학으로 정하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대기업에 입사에 탄탄대로를 달렸지만 윤희석은 어릴 적 꿈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윤희석에게 한 가지 제안이 들어왔다.

 

▶ 윤희석의 정치 "꿈"

 

2005년 고건 전 총리측에서 수행비서를 제안했다. 고건 전 총리가 원하는 몇 가지가 있었는데 윤희석에 부합했다는 것이다. 특히 키가 큰 윤희석을 마음에 들어 했고 대학 후배인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대선후보로 거론되던 고건 전 총리의 제안이었음에도 윤희석은 거절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대선 과정을 완주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6년 윤희석은 박근혜 후보 경선 캠프에 합류했다. 당시 박근혜와 이명박 후보가 경쟁하던 시기였고, 윤희석은 박근혜를 선택했다. 이를 아신 부모님은 완강하게 반대하셨다. 윤희석은 "지금까지 자식으로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았습니까? 꿈이 바뀌지 않는걸 어떻게 합니까"라고 설득했다. 

 

박근혜 캠프 합류를 결정했지만 기대했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캠프측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기다리는 말만 되풀이했다. 계속되는 기다림에 지친 사이 경선이 치러졌고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다. 윤희석은 다시 유학을 준비했다. 

 

유학 준비를 하는데 이명박 캠프에서 연락이 왔고 안국포럼 핵심 인사와 미팅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캠프 합류를 거절했다. 박근혜 경선 캠프에서 직접적으로 활동한 건 아니지만 지지하던 사람이 패했다고 이명박 캠프로 가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 정치 입문

 

유학을 준비하던 중 당시 서울시당위워장 공성진 의원의 연락을 받았다. 서울시 선대위 부대변을 맡아달라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윤희석은 정치에 입문했다. 공성진 의원을 따라다니며 정치를 배웠다.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공성진 위원을 도왔고 이후 다시 유학을 준비했다. 

 

지방선거까지 본인이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휴식을 취하며 공부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김재원 의원의 연락을 받았다. 다음 대선에서 꼭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연락을 받고 귀국해 김재원 의원과 박근혜 후보를 도왔다.

 

2012년 박근혜 후보는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 박근혜 대선 캠프가 만들어졌고 김재원 의원은 새누리당 대변인이 되었다. 윤희석 역시 앞날이 밝은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구설수에 휘말려 기자에게 폭언을 했다는 논란이 일었고, 김재원 의원은 대변인에서 물러났다. 

 

김재원 의원과 가까웠던 윤희석 역시 밀려났다. 2012년 10월 겨우 박근혜 캠프에 합류해 방송에 출연하는 등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박근혜 후보는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고, 윤희석은 청와대 대변인실 발령을 받았다. 1년 동안 대변인실에서 근무했고 이후 정무비서관실로 자리를 옮겼다. 

 

▶ 윤희석의 말말말

 

자유한국당 시절 윤희석은 서울 강동구 갑 당협위원장을 맡았다. 당협위원장은 정당의 하부 조직으로 국회의원 지역구별로 존재하는 당원협의회 대표다. 소속 국회의원 선거구 내 당원의 여론 등을 도당, 중앙당에 전달하며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소속 지역구의 기초자치의원 공천권을 갖는 등 권한도 강하고 당내 입지가 쎄다. 

 

윤희석은 김종인 비대위에서 대변인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김종인 위원장은 윤희석을 불러 윤석열 캠프에 합류하라고 제안했다. 윤석열을 도울 수밖에 없고, 윤석열은 밖에 대통령이 될 사람이 없다고 덧붙였다. 또 윤석열 캠프에서 대변인을 맡으로 하여 알겠다고 수락했다.

 

윤석열 국민캠프에서 대변인을 맡으며 대선 승리에 일조했다. 대선 승리 후 방송에 출연하여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차분한 말투와 논리적인 어조로 시청자들의 인심을 사며, 때로는 유쾌한 농담도 던지는 의외의 모습도 보여준다. 

 

가끔 화가나면 다혈질로 변해 상대를 몰아붙이기도 하는 등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준석 대표 징계, 권성동 의원이 노출 한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 수해현장에서 한 막말, 윤석열 막말 등을 방어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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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란 조장자 이준석 이준석은 2011년 12월 박근혜 키즈로 정치에 입문했다.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발탁되어 화제가 되었다. 보수는 나이가 많다는 공식을 깬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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