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Pengu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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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시작

부푼 꿈을 안고 입사했던 직장이 있었다. 나름 자격증도 갖추고 경력도 쌓았지만 그곳에서는 나는 쌩 신입이었다. 현실이 그렇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난 그렇게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팀원들은 모두 여자들이었고, 남자들과는 당연히 달랐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니까, 이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직장상사는 여느 사람과는 달랐다. 상당히 감정적인 사람으로 본인의 감정을 여과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쏟아 내었다. 그 상사는 직장 내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업무능력은 뛰어나, 다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즉 일은 잘하는데 지랄 같은 성격을 가진 소유자였다.

 

그 직장상사 밑에서 1년 이상 버틴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그만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상황에서 신입인 내가 그 직장상사 밑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때 생각은 이랬다. 그런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피해갈 수 없다면 정면 돌파도 방법이다.

 

다른 동료들은 나를 불러세우고 걱정을 해주었다. 조심해라. 쉽지 않을 거다. 절대 그만두지 마라. 힘들면 얘기해라 등등... 이럴 거면 나를 왜 그 팀에 넣었지? 그렇게 걱정되면 다른 팀으로 배정하면 될 텐데... 결국 누군가는 맡아야 하고, 본인들은 하기 싫고... 하지만 신입인 내가 걱정은 되고... 뭐 그런 복합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직장상사는 겉보기에 매우 친절한 사람이었다. 세심하고 목소리도 상냥했다. 그래서 나는 다들 괜한 걱정을 하는구나~라고 여겼다. 역시 사람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들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는 모르지만, 편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 노력이 생각보다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

 

 

버티기

직장상사는 감정기복이 심했다. 물론 누구나 다 감정의 기복을 겪는다. 하지만 그 직장상사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패턴 변화가 빠르게 일어났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상황에서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맞딱들이게 되었고, 내 감정은 점점 병들어 갔다.

 

일례로 날씨가 않좋으면 안 좋다고 화내고, 좋으면 좋다고 화낸다. 아니 날씨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내가 날씨를 변하게 한 것도 아닌데, 나에게 화를 내었다. 그런데 웃긴 건 나한테만 화를 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매우 친절한 직장상사였다. 아마 내가 가장 만만하게 보이는 신입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난 생각보다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다. 살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항상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극복 할 방법을 찾아낸 곤 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미덕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버티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리라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긍정적인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 직장상사의 괴롭힘은 정도를 더해갔다. 아주 세세한것까지 지적하고 괴롭혔다. 면도가 잘 안되었다는 둥, 왜 신용카드를 안 쓰느냐는 둥, 걸음걸이가 이상하다는 둥 갖가지 이유를 들어 나에게 지적하고 화를 냈다. 사실 업무적으로도 괴롭혔지만 이건 회사 생활이라 받아들이고 넘어갔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생활을 건드리는 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켰다. 정말 죽빵을 한대 날리고 싶은 생각이 수천번도 더 들었다. 그래도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버틸 수 있다. 버티다 보면 무언가 해결책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난 입을 닫기 시작했다.

 

말하기

난 직장상사와의 대화를 최소한으로 제한했다. 항상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신호를 방출하였다. 다른 동료들은 나에게 무슨 일 있냐고 걱정했지만, 난 그마저도 답하지 않고 묵언수행을 했다. 직장상사는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직장상사와 출장을 갈 일이 많았다. 그럴 때면 당연히 방을 따로 썼다. 저녁에는 같이 식사를 했는데, 술을 좋아하는 직장상사라 같이 술을 안 마셔주면 삐지고 화를 냈다. 그런데 같이 마셔주면 코가 삐뚤어지게 취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하여 이마저도 거부하였다. 

 

그러니 직장상사는 나를 더욱 미워하였다. 한 번은 업무 후 저녁에 산책을 나갔다 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침에 직장상사가 어제 어디 다녀왔냐고 물었다. 난 산책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러자 문을 열고 닫는 소리가 몇 시쯤에 났다며 늦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나에게 말했다. 순간 섬뜩했다. 이제는 내 발소리까지 감시하는 건가...

 

나는 참다 참다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래서 면전에다 대고 직접 얘기하기로 했다. 직장상사도 무언가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고칠 점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굴을 보고 직접 말했다. 나의 행동에 당황해하는 직장상사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

 

난 나에게 막말하는 걸 멈추어 달라고 했다. 그때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만 유독 집착하면서 나쁜 말을 내뱉는 걸 멈추어 달라고 말했다. 직장상사는 내가 버릇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앞으로는 자제하겠다고 말했다.

 

 

포기하기

난 모든 게 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역시 사람 간에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면 풀지 못할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 나름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 잘 해결했다고 자위했다. 앞으로 직장상사와 업무적인 관계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직장상사는 말 그대로 말 뿐이었다. 말투도 변한 게 없었고, 여전히 본인의 나쁜 감정을 나에게 여과 없이 쏟아내었다. 난 친한 동료에게 어려움을 토로했다. 동료는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너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나가떨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조금만 더 버티라고 말했다. 하지만 직장상사의 괴롭힘은 정도를 더해갔다. 주말에도 호출하는가 하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나를 괴롭혔다. 난 동료에게 말했다. 내가 그만두지 않으면 정신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신치료를 받지 않으면 이 상황을 버틸 수 없을 것 같다고 맗했다. 그제야 동료도 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이해해 주었다.

 

직장상사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물론 이유는 학업 정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었다. 직장상사는 그만두지 말라며 몇 시간 동안 나에게 설교를 했다. 일하면서 공부하라고 했다. 하지만 난 굽히지 않았다. 결국에 실장님이 나를 호출했고 둘이 소주 한잔 하면서 대화를 했다. 실장님은 이런 상황이 생길 것이라 우려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날 그 팀에 넣은 것이다.

 

그만두기로 하고 송별 회식도 치렀다. 다들 나의 앞날을 걱정해 주었는데, 그 직장상사는 나에게 버릇이 없었다고, 앞으로 그렇게 살지 말라고 충고를 했다. 마지막 자리에서까지 막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그만두기로 한 나의 결정이 옳았음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만두었고, 그만둔 후 새로운 직장을 찾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대화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내려놓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그 방법이 옳았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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