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의 라스트 댄스
의외의 선전이었다. 김연경이 이끄는 여자배구 대표팀은 도쿄 올림픽 4강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애초 1승도 어려울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도미니카공화국, 일본, 터키 등 강팀을 연달아 꺾으며 기세를 올렸다. 지난 2021 VNL에서 3승 12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으며, 우리를 실망시켰던 그 여자배구 대표팀이 말이다.
이 성과가 모두 김연경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김연경이 없었다면 이루기 힘든 성과였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여자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 이후 아직까지 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1984 LA올림픽, 1996 애틀랜타 올림픽,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5위를 차지했고, 2012 런던 올림픽에 4강에 올랐지만 숙적 일본에 패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당시 2012 올림픽 멤버는 역대 최강 전력으로 평가받았고 , 당시에도 주포는 김연경이었다.
▶김연경이란 거목
김연경은 한국 여자배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플레이어로 한국, 일본, 터키, 중국 리그를 평정한 선수다. 공격, 수비, 서브 모든 면에서 뛰어난 멀티플레이어로, 우리나라 여자배구 선수 중 김연경과 비교될 만한 선수는 아직까지 없다.
▶언니들의 은퇴
김연경은 도쿄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선수생활을 끝내는 것이 아닌, 더 이상 올림픽에서 뛸 수 없음을 의미한다. 2023 파리 올림픽 때 김연경의 나이는 37살이다. 물론 자기 관리만 잘한다면 파리 올림픽도 바라볼 수 있지만, 김연경은 아쉬운 은퇴를 선언했다.
김연경뿐만이 아니다. 국가대표 주전센터 김수지(1987년생), 양효진(1990년생) 역시 파리 올림픽 출전이 불투명하다. 출전하더라도 전성기 때의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다. 한국 여자배구가 강해진데 김연경의 공이 가장 컸다면, 그 옆에서 든든히 버티고 있던 김수지와 양효진 역시 큰 기여를 했다.
양효진은 190cm의 장신 센터로 블로킹과 공격에 능하다. V리그 여자배구 블로킹 1위를 수년째 고수하며, 연봉도 가장 많이 받고 있다. 김수지 역시 188cm의 신장에 이동공격과 블로킹에 능하다. 장신의 외국 선수들을 상대하는데 두 사람의 존재는 큰 빛을 발했다.
▶박정아와 김희진
당장 파리 올림픽까지는 박정아(1993년생, 187cm)와 김희진(1991년생, 185cm)이 뛸 수 있다. 물론 두 사람도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김연경을 비롯한 언니들과 같이 호흡을 맞춘 베테랑이다. 특히 박정아는 이번 도쿄 올림픽을 통해 리시브와 공격면에서 많이 성장했다.
김희진은 제 기량을 100% 모두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국가대표 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다. 김희진은 국내에 몇안되는 토종 라이트다. 프로팀에서는 센터로 뛰지만 국가대표에서는 라이트로 뛴다. 포지션 변화 때문에 컨디션 난조를 보이는 날이 많았지만 제 몫은 해주는 선수다.
▶김연경의 빈자리
현재로서는 이소영(1994년생, 176cm)과 강소휘(1997년생, 180cm)가 가장 유력한 대체자다. 이소영은 신장은 작지만 공격과 수비 모든 면에서 육각형 능력치를 갖춘 선수다. V리를 씹어먹을 정도의 기량을 갖추고 있지만, 장신의 해외 선수들을 상대로는 신장의 한계가 아쉽다.
강소휘는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득점을 내는 선수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부족했던 리시브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 다만 이소영보다 약간 클 뿐 국제무대에 통하기에는 신장이 작은 건 마찬가지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는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정지윤(2001년생, 180cm)의 성장 역시 기대해볼만하다. 정지윤은 제2의 강소휘를 연상시키는 강력한 스파이크를 구사한다. 다만 프로에서 센터 포지션으로 뛰었고, 아직 리시브가 불안하다. 정지윤은 레프트보다는 김희진의 뒤를 이어 라이트 포지션으로 뛰는 것도 염두해볼 수 있다.
표승주(1992년생, 182cm)는 라바리니 감독에게 신임을 받는 선수다. 신장도 준수하고 공격력도 좋다. 다만 리시브가 불안해 주전으로 뛰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레프트가 가장 문제다
김연경은 레프트 포지션이다. 레프트는 공격과 수비 모든 면에서 활약해야 하는 막대한 임무를 가진다. 공격에서 라이트와 함께 팀의 주득점원이 되어야 하고, 수비에서는 리베로와 함께 강력한 리시브 라인을 형성해야 한다. 이래저래 참 바쁜 포지션이다.
이소영, 강소휘, 정지윤, 표승주 모두 준수한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지만, 신장이 너무 아쉽다. 박정아(187cm)를 제외하면 185cm가 넘는 레프트 선수가 V리그에 없다. 지민경(1998년생, 184cm)이 가장 큰 축에 속하지만 기량은 앞선 네 선수들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사실 제2의 김연경으로 불린 후보선수(?)도 있다. 선명여고 에이스로 활약했던 정호영(2001년생, 190cm)이다. 190cm의 장신에 고교리그를 평정한 탁월한 공격력으로 김연경의 뒤를 이을 레프트 선수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프로무대에서 전혀 통하지 않는 소녀 스파이크를 구사해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지난 시즌에는 부상으로 시즌 아웃당하며 2중고를 겪었다. 현재 정호영은 레프트가 아닌 센터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신장이 좋긴 하지만 파워가 부족하다. 향후 프로무대에서 경험을 쌓아 다시 레프트 자리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피지컬이 훨씬 강해져야 한다.
▶양효진과 김수지의 후계자
센터(미들블로커)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 박은진(1999년생, 187cm)과 이주아(2000년생, 185cm)는 고등학교 때부터 성인대표팀에 발탁되며 언니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특히 박은진은 신장이 좋고 블로킹도 준수하다. 게다가 서브 능력까지 탁월해 라바리니 감독의 애제자 중 한 명이다.
이주아는 박은진보다 약간 작지만 이동공격에 능하다. 또 이다현(2001년생, 185cm)도 급성장하고 있다. 신장은 약간 아쉽지만 파워 넘치는 플레이로 정통 센터의 계보를 잇는 이다현이다. 박은진, 이주아, 이다현이 잘만 성장한다면 양효진과 김수지의 공백을 충분히 메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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