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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언니왔다

배구여제 김연경이 돌아왔다. 흥국생명에서 데뷔한 이후 일본, 터키, 중국을 거쳐 다시 한국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일본으로 이적할 때만 해도 앳땐 소녀 같았던 김연경은 세계 정상급 리그를 씹어 드시고 유유히 국내 리그로 돌아와 폭격을 가하고 있다.

 

이제 서른을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월드클래스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김연경이다. 국내무대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도 김연경 앞에서는 한없이 작게 보인다. 국내파 선수들을 무시하는 게 아닌 그만큼 김연경의 기량이 월등히 앞서는 것이다. 그 차이가 너무도 커 마치 피겨의 김연아를 보는 듯하다. 

 

김연경이 국내 무대 복귀를 선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왜? 라는 물음이 절로 나오게 한 김연경의 행보다. 세계 정상급 리그에서 수많은 러브콜과 함께 엄청난 연봉을 제시했음에도 김연경은 국내 복귀를 택했다. 그것도 김연경 없이도 우승후보로 꼽히는 흥국생명으로 말이다.

 

사람들은 흥국생명을 가리켜 흥벤져스라 부른다. 원래 강팀이었는데 김연경의 합류로 부동의 우승후보가 되어 버렸다. 코보컵에서 흥국생명의 경기를 본 사람들은 우승을 논하기보다, 누가 흥국생명을 상대로 1 세트라도 따낼 수 있을지 의견이 분분할 정도다. 

용병보다 강한 김연경=밸런스 파괴자

2005년 흥국생명에서 데뷔 한 김연경은 4 시즌 동안 정규리그 우승 3회, 챔피언 결정전 우승 3회, 통합우승 2회를 달성했다. 데뷔 시즌 신인상, 정규리그 MVP, 챔피언결정전 MVP, 공격상, 득점상, 서브상 등 6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후 일본으로 날아가 정규리그 우승 2회, 파이널 우승 1회·준우승 1회를 달성하며 JT마블러스 창단 이래 유일한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국내 선수로는 최초로 해외진출 한 사례로 단 2 시즌만에 팀을 일본리그 정상에 올려놓으며 다시 한번 그 진가를 입증했다. 

 

 

하지만 김연경은 여기서 머물지 않았다. 2011년 터키 페네르바흐체로 이적해 첫 시즌만에 팀의 창단 후 첫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김연경은 MVP와 득점왕을 수상했다. 세계 최고의 리그로 손꼽히는 터키리그에서 이적한 첫 시즌에 달성한 대기록이다. 

 

터키리그에서 김연경은 정규리그 우승 3회, 파이널 우승 2회, 2시즌 연속 공격상과 득점상을 받았다. 이후 중국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로 이적해 팀을 17년 만에 정규리그 1위와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이끌었다. 2018년에는 다시 터키 리그 엑자시바시로 이적해 주장을 맡으며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흔히들 우승청부사라고 부르는 많은 선수들이 있지만, 김연경은 국제무대를 휩쓸며 가는 곳마다 팀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탁월한 리더십을 갖춰 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주장을 맡는 등 그 기량을 인정받았다. 단순한 외국인 용병이 아닌 팀을 이끄는 자질을 갖춘 선수로 평가받고 있는 김연경이다. 

 

 

V리그 여자배구는 용병이라 부르는 외국인 선수가 팀당 1명만 뛸 수 있다. 그래서 용병은 주 득점원으로 활약하며 공격 또 공격 일변도의 플레이를 한다. 그래서 용병들을 매경기 30~40 득점 이상을 올리며 몰빵 공격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 오는 용병들의 수준도 점차 높아져 국제무대 정상급 선수를 비롯해 국가대표로 뛰고 있는 선수도 다수 있다. 

 

국내 리그에서 용병의 활약을 보면 국내 선수들보다 한수 위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신장, 파워, 득점력 등 어느 하나 국내 선수가 따라가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래서 매년 용병을 뽑는 트라이아웃은 감독들의 눈치작전이 펼쳐진다. 이미 1순위는 다들 마음속으로 정해져 있고, 누가 우선순위로 용병을 선발하느냐가 관건이다. 기량이 우수한 용병을 선발하면 그 해 시즌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연경은 국내에서 활약했던 그 어떤 용병보다 강하다. 용병보다 강한 선수가 바로 김연경이다. 비단 득점력뿐만 아니라 테크닉면에서도 김연경은 세계 최정상급 플레이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흥국생명으로 복귀한 김연경을 두고 밸런스 파괴자라 부른다.

 

 

이미 흥국생명에는 이재영과 루시아같은 우수한 득점포가 가동 중이다. 그런데 여기에 김연경이 합류했으니 다른 팀에 비해 전력면에서 크게 앞서는 건 당연하다. 기존의 여자배구는 서로 물리고 물리는 접전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김연경의 흥국생명은 강해도 너무 강해 누가 상대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김연경의 국내복귀가 어렵게 올려놓은 여자배구의 인기를 사그라들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흥국생명의 경기를 보면 너무나 압도적이라 보는 맛이 떨어진다. 승자가 정해져 있는 스포츠 게임이 재미있을 리 만무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김연경이 있다. 

 

김연경이 국내리그로 복귀한 이유

그럼 김연경은 왜 국내무대로 돌아왔을까? 사실 국내에서 우승 몇 번, MVP 몇 번을 더 달성한다고 해도 김연경의 커리어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연봉도 대폭 줄여서 돈을 벌 목적도 아닌 게 분명하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해외리그 운영이 어려운 것도 김연경의 복귀에 한 몫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본인 커리어 및 돈을 포기하고 국내에 복귀해 밸런스 파괴자 소리를 듣는 김연경의 본의는 무엇일까? 김연경은 1988년생으로 33살의 나이다. 배구선수로서 이미 노장축에 속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선수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이를 먹으면 기량이 떨어져 예전만큼 국제무대에서 통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게다가 김연경은 레프트(윙스파이커)다. 배구에서 레프트는 공격은 물론 수비 가담도 해야하고 블로킹, 서브 등에서 활약하는 전천후 포지션이다. 엄청난 체력이 요구되며, 만약 체력이 떨어지면 예전만큼 기량을 선보이기 힘들다. 한 예로 KGC인삼공사의 한송이 역시 잘 나가는 레프트였지만 지금은 센터로 변신해 뛰고 있다. 김연경도 향후 선수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 포지션 변화를 줄지도 모른다.

 

아무튼 차치하고 현재 김연경은 월드클래스 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실력으로 국내무대에 복귀한 것이다. 단순히 코로나19 때문에 해외생활이 어려워 국내에서 여포 노릇을 하려 복귀한 건 아닐 거고, 그럼 왜 왔을까? 결론은 이미 김연경이 밝힌 바 있다.

 

 

그건 바로 도쿄 올림픽이다. 김연경은 현재 올림픽 하나만 바라보고 있다. 세계 최정상급 기량을 유지한채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다시 한번 메달에 도전하려 국내 리그로 복귀한 것이다. 흥국생명만 봐도 이재영, 이다영, 이주아 등 국가대표에서 같이 뛰고 있는 선수들이 많아 호흡을 맞추기 딱 좋다. 

 

게다가 내년 도쿄 올림픽이 개최된다고 가정하면, 훈련이나 이동, 생활 등 국내에 머무는게 본인 관리에 훨씬 유리하다. 해외리그에서 뛰고 있으면 구단의 차출 허락이 필요하고 장시간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따라서 국내에서 국가대표 선수들과 손발을 맞추며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겠다는 게 김연경의 본심이다.

 

그럼 밸런스 파괴 문제는 어떻게 봐야할까? 몇 년 전만 해도 여자배구의 인기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약간의 매니아층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팀 간의 박진감 넘치는 경기와 더불어 한 미모 하는 선수들이 등장하며 요즘은 남자배구의 인기는 진작에 넘어섰고, 이제는 야구의 인기를 위협할 정도다.

 

김연경의 복귀는 여자배구의 인기가 앞으로 더 오를지 말지를 가늠할 분기점이다. 김연경이 절대강자임은 분명하지만 배구는 팀 경기다. 따라서 전략과 전술도 큰 몫을 차지한다. 만약 흥국생명을 꺾는 팀이 나오게 된다면, 여자배구의 인기 상승은 물론 새로운 슈퍼스타의 탄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코보컵에서 신예 이다현은 김연경의 스파이크를 막아내고 포효했다. 배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블로킹이지만 이다현은 전혀 다른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의 공격을 막아내면 얼마나 짜릿할까? 이다현은 지금도 그 느낌을 잊지 못할 것이고, 평생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 김연경을 막았으니 말이다. 여자배구가 더 성장하려면 김연경을 넘어서야 한다. 아마 김연경도 그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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