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의 무게감 |
GS칼텍스에 이소영이란 선수가 있다. 배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익숙지 않은 이름이겠지만, 현 V리그 여자배구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레프트(윙스파이커)로 꼽힌다. 꾸준하게 국가대표에 선발되고 있으며, GS칼텍스에서 강소휘와 함께 가장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
이소영은 작다. 176cm로 레프트치고 정말 작은 키다. 그 유명한 김연경이 192cm, 박정아가 187cm인걸 감안하면, 이소영이 얼마나 작은지 가늠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공격력은 리그 탑 수준의 기량을 갖춘 이소영이다. 엄청난 점프력으로 활처럼 뛰어올라 강력한 스파이크를 구사한다.
이소영의 공격은 막기 힘들다. 점프해서 최고점에서 공을 때리는 일반적인 플레이와 달리 최고점에서 살짝 내려와 공을 때린다. 쉽게 말해 점프해서 체공하는 시간이 길어 블로커가 타이밍을 잡기 힘들다. 그리고 페인트 공격도 일품이다. 한번 폭격을 시작하면 전위와 후위 가리지 않고 맹공을 퍼붓는 이소영이다.
하지만 여자배구 판에서 이소영만큼 혹은 이상의 공격력을 갖춘 선수는 꽤(?) 있다. 이재영, 박정아, 강소휘, 김희진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이소영이 빛나는 이유는 비단 공격력 때문만은 아니다. 같은 팀의 강소휘만 봐도 이소영에 버금가는 공력으로 팀의 주 득점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소영이 팀의 에이스로 불리는 이유는 공격과 수비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레프트라는 포지션이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활약해야 하는 힘든 위치다. 우리나라 레프트 중 단연 탑은 김연경이다. 김연경은 월드클래스 급 공격력과 효율 높은 리시브를 구사하는 최고의 선수다.
국내 리그에서는 이재영이 있다. 이재영은 국내 탑 레프트로 경기당 30~40 득점을 올리면서도, 리시브 효율이 40%가 넘어가는 괴물급 선수다. 이소영은 이재영에 비해 한 단계 아래로 평가받지만, 역시나 리그에서 공격과 수비력을 모두 갖춘 몇 안 되는 최고의 레프트로 꼽힌다.
지난 시즌 GS칼텍스의 성적을 보면 이소영이 있고 없고가 확연히 차이 난다. 1라운드는 이소영의 활약으로 라운드 전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이소영이 부상으로 빠지자 팀은 연패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다시 돌아온 이소영이 팀의 중심을 잡아 주었고, GS칼텍스는 2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유리몸 & 기복왕 이소영 |
이렇게 대단한 선수인데 왜 대중들은 잘 모를까? 그건 이소영이 가진 실력에 비해 팀과 개인성적 면에서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소영은 유난히 부상이 잦다. 정규시즌을 잘 치르다가도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이소영을 가리켜 유리몸이라고 부른다. 지난 시즌에도 1라운드 전승 후 부상을 당해, 다시 팀을 위기에 빠트린 만든 장본인이다. 물론 누가 부상을 당하고 싶겠냐만은 잦은 부상 역시 본인 관리의 문제다. 몇몇 이소영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키에 비해 무거운 체중 때문에 부상이 잦다고 말한다. 솔직히 틀린말은 아니다. 엄청난 점프를 해대는데 체중이 무거우니 그만큼 발목과 무릎에 무리가 가게 사실이다.
또 이소영은 기복이 심하다. 잘 풀리는 날은 펄펄 날아다니는데, 안 풀리는 날은 죽을 쑤듯 경기를 한다. 즉 컨디션 기복이 심하다는 의미다. 경기의 승부처에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게 에이스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소영은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흔히 클러치 상황이라고 하는데, 한국도로공사의 박정아는 클러치 박으로 불릴 만큼 위기상황에서 팀을 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혹자는 GS칼텍스의 에이스를 이소영이 아닌 강소휘로 꼽기도 한다. 사실 강소휘 역시 에이스 자질이 충분한 선수다. 이소영이 부상으로 빠져있을 때, 팀을 이끈건 강소휘였다. 벽치기의 달인, 강공 강소휘 선생은 두려움을 모른다. 리시브도 점차 나아지고 있어, 국가대표에서는 이소영보다 강소휘의 활약이 더 두드러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GS칼텍스의 에이스는 이소영이다. 에이스란 팀의 중심을 잡아주고 위기 상황에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1경기 1경기 승패를 좌우하는 상황에서는 강소휘의 활약이 두드러질지는 몰라도, 리그 전반을 놓고 보면 이소영이 훨씬 무게감이 있다.
그리고 이소영이 있기에 강소휘라는 거포가 활약할 수 있다. 이소영이 뒤에서 묵묵히 리시브를 올려주고, 디그로 수비를 해내기에 강소휘가 마음놓고 때릴 수 있게 된다. 이소영과 강소휘는 이제 GS칼텍스를 대표하는 쌍포로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라인으로 통한다.
결국은 에이스가 해야한다 |
이소영도 이제 20대 후반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번 시즌 체중감량을 하면서 점프모션이 훨씬 가벼워졌다. 다른 팀들은 FA와 트레이드로 전력 변화가 심한데 반해, GS칼텍스는 이고은을 내준 거 외에는 큰 변화가 없다. 외인 용병 러츠도 다시 돌아왔다. GS칼텍스가 우승을 바라볼 수 있는 적기가 바로 올 시즌이다.
이소영-러츠-강소휘라는 강력한 삼각편대를 주축으로 블로킹이 뛰어난 한수지가 버티고 있다. 신예 권민지는 부족한 중앙 공격을 채워주고, 한다혜의 리시브와 디그는 시즌을 거듭할 수록 발전하고 있다. 더불어 안혜진이 닥 주전으로 나서면서, 보다 빠른 스피드 배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어린 안혜진이지만 빠른 토스와 날카로운 서브를 갖추고 있는 세터 유망주다. 이고은의 빈자리가 크지만 안혜진이라면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기량을 갖추고 있다. 새로 이적한 이원정 역시 세터로서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다. 한국도로공사에서는 언니들에 눌려 기를 못 폈다면, GS칼텍스는 또래 친구들이 많아 적응하기 훨씬 편할 것이다.
GS칼텍스의 장점이라면 백업 선수층이 두텁다는 것이다. 레프트로 박혜민, 권민지, 유서연이 있고, 라이트로 문지윤이 있다. 리베로 자원으로는 한수진, 김해빈, 김채원이 있다. 센터라인이 약한게 흠이지만 206cm의 러츠와 블로킹이 좋은 한수지가 있다. 다만 중앙 공격 점유율이 낮다. 이것도 올 시즌 한수지가 적극적으로 중앙 속공에 나서고 있어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GS칼텍스의 경기를 보면 항상 마무리가 아쉽다. 1세트와 2세트를 내리 따내고도 3세트부터 무너지기 시작하여 경기를 내주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5세트의 강자 KGC인삼공사를 만나면 맥을 못 춘다. 이번 코보컵에서도 3세트 후반까지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다 갑자기 무너져 내리면서 경기에 지고 말았다.
이 책임은 에이스 이소영에게 있다. 에이스가 경기를 결정짓지 못하면 팀은 패배한다. 흥국생명을 봐도 이재영이 얼마나 활약하느냐에 따라 경기의 승패가 갈린다. 물론 에이스라고 모든 경기를 이기게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팀을 우승으로 이끄려면 위기의 순간(클러치 상황)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내년이면 이소영과 강소휘 모두 FA시장에 나서게 된다. 둘 다 팀에 남을지 이적을 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러츠 역시 GS칼텍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즌이다. 올해가 우승하기 딱 좋은 날씨 시즌이다. 하지만 절대강자 김연경이 돌아왔다. 흥국생명은 김연경, 이재영, 루시아라는 말도 안 되는 전력으로 코보컵을 휩쓸고 있다. 우승이 누구냐가 아닌 누가 흥국생명을 상대로 1세트라도 따낼 수 있을지가 주목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소영은 항상 이재영보다 한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아왔고, 또 사실이었다. 흥국생명을 넘어서지 못하면, 이재영을 압도하지 못하면 절대 우승을 바라볼 수 없다. 이소영이 해줘야 하고, 이소영만이 GS칼텍스를 우승으로 이끌 수 있다. 흥국생명과 불꽃같은 화력전을 펼쳐 장렬히 산화할지언정 한번 붙어봐야 한다.
GS칼텍스는 충분히 흥국생명과 해볼만하다. 김연경-이재영-루시아 삼각편대에 대항할 수 있는 전력은 오직 GS칼텍스의 이소영-러츠-강소휘뿐이다. 러츠라면 김연경의 높은 타점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파이크를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강소휘라면 루시아와의 득점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그렇다면 이소영이 해줘야 한다. 이소영이 이재영을 넘어선다면 흥국생명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이소영은 자질이 충분하고 준비가 되었다. 항상 그 머뭇대는 버릇만 고친다면, 위기의 순간에 빠르게 판단하고 대응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흥국생명과 GS칼텍스가 불꽃같은 화력전을 펼친다면 여자배구를 보는 팬들은 열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소영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소영은 에이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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