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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프로필

황교안현 미래통합당 대표이자 대통령 권한대행, 자유한국당 대표, 44대 국무총리, 63대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1957년 4월 15일 서울 용산구에서 출생하여, 경기고-성균관대-성균관대 대학원을 졸업했고, 배우자와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서울대 법대를 재수까지 하며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후기로 성균관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알레르기와 가려움증을 동반하는 담마진으로 군대 면제를 받았다. 제23대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13기를 마치고 청주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지검 공안부에 충원되면서 공안검사로 이름을 알렸다.

 

 

검사 시절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임수경 방북 사건,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등을 담당했다. 2011년 검사 생활을 마치고 변호사로 개업하여,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을 맡았다.

 

황교안의 재산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잠원동에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는 약 30억원 정도로 평가받고 있다. 1996년 전입신고 한 뒤 24년째 살고 있는 아파트로 전용면적 141.53제곱미터다. 2013년 법무부 장관 시절 공직자 재산신고에서 가격을 9억 8400만 원으로 신고했지만, 현재 시세는 이보다 크게 오른 것으로 보고 있다.

 

황교안과 박근혜 그리고 최순실

2013년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법무부 장관 재임시절 통합진보당 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직접 청구하고, 변론도 직접 맡았다. 최후변론에서 통합진보당 측 변호를 맡았던 이정희와 대결이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통합진보당의 해산 지지가 더 높아, 이를 기반으로 황교안은 국무총리로 자리를 옮겼다.

 

2015년 56.1%라는 낮은 찬성율로 쉽지 않은 국무총리의 길을 시작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사임 의사를 밝혔고 국민대 김병준 교수가 국무총리로 내정되었다. 하지만 야당이 사전 협의가 없었음을 이유로 국회 동의 절차를 거부하여 유임되었다. 황교안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국무총리로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대통권 권한대행이 되었지만, 황교안은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총리라는 점과 공안 검사 출신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탄핵된 마당에 총리마저 탄핵된다면 국정 공백이 심각해지기 때문에 야권과 여권 모두 황교안에게 대행을 맡겼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는 대선 지지율 10%를 넘기면서, 강력한 대권주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아마 박근혜 보다는 낫다는 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은폐 및 방해에 관련되었다는 정치 공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자리를 지켰다. 2017년 국정 공백의 안정과 공정한 대선관리를 위해 19대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19대 대통령으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자, 사표를 제출했다.

 

황교안의 정치인생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회동에서, 만류에도 불구하고 총리직 사퇴를 고집했다. 이는 공무원 황교안이 아닌 정치인 황교안의 첫 행보이며, 문재인 정부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후 SNS를 이용하여, 본인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 해명하기 시작했다. 

 

황교안의 행보는 막말의 달인 홍준표보다 낫다는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통합진보당 해산, 모범생 스타일,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 수행 등 대중에게 안정감을 주는 정치인으로 인식이 되었다. 특히 홍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비난 발언으로, 박사모들의 반발을 샀지만, 황교안은 이마저도 본인 지지율로 끌어안았다.

 

2017년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일했던 점이 약점으로 작용했지만,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잘 피해 갔다. 이후 황교안은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출마해 김진태, 오세훈 후보를 제치고 선출되었다. 

 

이후 황교안은 자유한국당 개편, 조국 논란에 광폭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특히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임명된 것에 항의하여 삭발식을 진행했다. 또한 지소미아 유지 및 패스트트랙 철회, 공수처 철회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투쟁에 들어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왕이 되고픈 남자, 황교안

황교안은 잘 나가던 공안검사였다. 법조계에서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아, 박근혜에게 간택 당한 남자다. 이후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대통권 권한대행 등 굵직굵직한 자리를 맡으며 단시간에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 물론 황교안을 둘러싼 많은 논란이 있고 아직도 해소되지 못한 것들이 많다.

 

 

특히 두드러기를 동반한 담마진으로 군면제를 받은건 황교안에게 치명타다. 담마진이 비교적 흔한 병으로, 군면제 사유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당시 황교안이 면제 판정을 받은 것은 1980년 7월 4일인데, 정밀 신체검사를 받은 날짜는 1980년 7월 10일이다. 국방부는 행적적 실수라고 하지만, 당시 군의관의 설명으로는 황교안이 담마진을 주장하므로, 최종 판정을 보류한 채, 국군수도병원 피부과에 정밀검사를 의뢰해 생긴 해프닝이라고 설명했다. 황교안은 군 의료기관과 국방부 자료가 폐기된 1995년 담마진이 완치되었다고 주장해, 자료가 없다고 했다. 이밖에도 삼성 비자금 사건, 아들 병역 의혹, 전관예우 등 많은 논란을 몰고 다니고 있다.

 

누가 뭐라해도 황교안은 박근혜의 남자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밑에서 굵직한 요직을 맡은 주요 인물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황교안은 자유한국당을 거쳐 미래통합당 대표를 맡으며, 야권 보수세력의 끝 자리에서 군림하고 있다. 현재 보수권에서 대권에 도전할 만한 잠룡들이 시원찮은 점도, 황교안이 지지율을 모으는 이유 중 하나다.

 

황교안이 대권 주자로 부상하면서 이낙연과의 대결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정치 1번지 종로에서 국회의원직을 두고 피할 수 없는 한판을 치뤄야 한다. 이낙연에게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밀리는 모습이지만, 아직은 모른다. 황교안 관련주, 테마주도 연신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황교안은 이제 정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시작 단계부터 당 대표를 맡아 단숨에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 가장 큰 문제는 황교안이 아직 시험대에 제대로 올라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 시절 청문회를 거치긴 했으나, 국민의 선택을 받아본 적이 없다. 각종 선거에 나서 본적이 없기 때문에 아직 국민들에게 이미지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황교안이 총선과 대선에서 국민들의 시험대에 오른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아마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정치인 황교안이 되고자 마음먹었다면, 이제는 이 시험대를 물릴 수 도 없다... 

 

2020/02/22 - [이슈] - [정치 인물열전] 이낙연, 대권을 꿈꾸는 늙은 잠룡<프로필, 학력, 재산,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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