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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정치인 손학규는 1947년 경기도 시흥 출생이다. 경기고등학교-서울대학교 학사-옥스퍼드대학교에서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다. 육군 병장으로 군 복무를 마쳤으며, 슬하에 2명의 딸을 두고 있다. 배우자는 이윤영 씨다. 170cm의 신장에 68kg, 혈액형은 AB형이다.

 

대학교 재학시절 65번 삼총사로 불리는 김근태, 조영래 등과 함께 민주화 운동사회운동에 참여했다. 특히 사카린 밀수사건을 비판하여 탄광촌에 숨어 지내기도 했다. 박정희 치하 옥고를 겪으며 고생하다, 박정희 사망 후 가까스로 풀려났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귀국하여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다 1988년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되었으며, 1990년 서강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굴곡진 정치인생

 

김영삼의 제안으로 민주자유당에 입당했고, 199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선 되었고, 같은 해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었다.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조세형 후보를 꺾고 3선에 성공했다. 2002년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경기도지사로 당선되었다.

 

노무현 정부시절 이명박, 손학규, 박근혜한나라당의 3인방으로 불렸다.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경제 대통령 이명박, 민생 총리 손학규, 책임 당대표 박근혜라는 표어를 만들었을 정도로 인기 있는 정치인이다. 그러나 경선에 실패하면서 한나라당을 탈당하였다.

 

 

탈당 후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을 주도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정동영에게 대권 후보 경선에 패했다. 손학규는 지지기반이 없는 단점 때문에 항상 지지율이 낮았다. 이후 통합민주당의 초대 당대표가 되었으나,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종로에 출마했다가 한나라당 박진 의원에게 패했다. 이후 춘천시 모처에 칩거했다.

 

2년 만에 정치에 복귀한 손학규는 2010년 열린 전당대회에서 다시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2011년 재보궐선거에 당선되었다. 사지에 가까운 분당구 을에 출마했다가 기적같이 당선되어, 당내 입지가 올라갔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권에 도전했지만 문재인에게 패해 2위로 경선을 마무리했다. 2014년 재보선에서 전략공천을 받아 수원시 병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김용남 후보에게 패해 낙선했다. 2014년 7월 31일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라남도 강진군 만덕산에 칩거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이 재보궐 선거에서 전패해 문재인 당 대표의 지도력이 떨어지자, 손학규는 차기 대선주자로 다시 거론된다. 이에 많은 기자들이 강진에 찾아가 그에게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손학규는 묵묵부답이었다. 강진에 칩거 하면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당 후보들을 지원하며, 기회를 노리던 손학규. 그러나 문재인, 안철수가 20대 총선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손학규는 설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학규가 돌아왔다

2016년 10월 만덕산이 내려가라 한다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선언과 동시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제7공화국을 열겠다 소명했다. 2017년 2월 국민주권개혁회의라는 조직을 창립해 의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7월 국민의당과 통합을 선언했는데 구제역에 묻히고, 삼성전자 부사장 이재용의 구속 등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이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 후 바른미래당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2019년 보궐선거 실, 하태경·이준석·권은희 최고위원과 마찰을 빚으며 당내 입지가 좁아졌다. 2020년 1월 유승민계 의원 8명이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1월 27일에는 안철수 전 대표가 손학규의 사퇴와 당권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했다.

 

결국 안철수도 바른미래당을 탈당하고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주승용·김동철·김관영 의원등이 손학규에게 사퇴하지 않으면 탈당하겠다 통보했고, 최측근이었던 이찬열 의원까지 탈당하면서 손학규는 고립무원에 처했다. 이후 바른미래당, 대안신당, 민주평화당과 호남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밝혔지만, 이마저 거부해 논란이 더해가고 있다.

 

손학규가 남긴 유산

대학시절 민주화·사회운동을 주도했던 젊은 청년은 대한민국을 바꿀 지도자를 꿈꿨다. 정치인생을 시작하고 내리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당 대표로서 탄탄대로를 달렸다. 하지만 여러 차례 당적을 바꾼 철새 정치인으로 낙인찍혀, 정치기반이 없는 그저 유명인의 삶을 살았다.

 

정치에 혐오를 느끼고 칩거했던 강진을 찾아오던 수많은 인파들. 그들은 유명인 손학규의 명성을 빌리고 싶어했다. 결국 손학규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정계복귀를 선언. 하지만 분리되고 조각난 정계에 손학규의 자리는 굳건할 수가 없었다. 그의 유명세로 다시 당 대표가 되었지만, 안철수의 이름에 밀려 다시 2인자의 신세가 되었다.

 

사퇴를 요구하는 많은 목소리를 물리치고 당 대표를 고수했던 손학규. 홀로 바른미래당에 남아 호통을 치며, 나가려면 나가라 일갈하던 손학규. 그는 진정 본인의 정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치인인가? 아니면 마지막 남은 한줄기 희망을 놓지 못하는 고독한 노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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